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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mai 2016 1 16 /05 /mai /2016 18:13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입력2016-05-16 20:37:00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오월 광주 치유사진전’이 16일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 갤러리에서 개막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 기억 속 깊이 박힌 고통과 아픔의 현장을 찾아 촬영한 사진을 전시합니다. 고문이나 폭행, 죽음이 일어난 현장들입니다. 그들에게 30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정신적 상처를 안기는 장소들이죠. 유공자들은 그 현장을 피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사진 촬영은 당시 기억과 직접 대면하면서 스스로 치유의 힘을 회복하려는 행위입니다. 전시 주제는‘기억의 회복’입니다. 5·18 유공자 7명이 촬영한 사진 100여점을 선보입니다. 이들 작가와 대표 작품을 소개합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로부터 전시 자료를 받아 발췌해 싣습니다. 전시는 23일까지.

 

■곽희성 1959년 12월 생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80년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중 머리에 총을 맞고 죽어가는 고등학생을 차에 싣고 병원까지 수송하면서 제발 살아만 달라며 기도했던 기억을 아프게 가지고 있다. 주기적으로 악몽을 꾸는 등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으로 힘들 때가 많다.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5·18자유공원 상무대 영창 | 세월에 억눌린 분노는 쇠창살 같은 억압과 구속의 표상들을 찾아헤매게 했고 그 강제적 실체들과의 조우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흔들렸던 자신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박갑수 1953년 5월 생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80년 당시 직장이었던 동아 제재소에서 총무를 맡고 있었다. 계엄군의 지나친 진압작전에 분개하여 맨손으로 싸우는 학생들을 제재소 마당에 불러 모아 시위에 쓸 각목을 나눠주었다. 계엄군들의 구타와 당시의 잔혹한 상황에 대해 기억하고 말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5·18자유공원 상무대 영창 | 저 고무신을 신고 공포에 떨었을 동지들을 떠올리며 떨리는 가슴을 애써 눌러야만 했다.
 

“너무 마음이 자꾸 울적허더라구. 그래서 한 카트 찍어봤지.”

 

■서정열 1962년 6월 생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80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으로 시민군에 참여했다. 항쟁기간 막바지에 고등학생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권유를 받고 도청을 나왔으나 28일 체포되어 31사단으로 끌려가 구타 등 심한 고문을 당했다. 반복되는 기억과 울분, 도청에서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구 전남도청(현 아시아문화의전당) | 투쟁의 상징이었던 공간은 점차 희석되어가고 있다. 그 아쉬움 탓에 구 전남도청의 안과 밖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면서 당시의 기억들을 현재화시키는 중이다. 36년 세월의 흐름을 되살리기 위한 회복의 과정인 것이다.

 

■양동남 1961년 1월 생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80년 5월 가톨릭센터 앞에서 리어카에 실려 있는 시신을 보고 시위에 참여 했다. 화순경찰서 무기고에서 총을 가져와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기동타격대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27일 새벽 계엄군에게 체포되어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다. 모진 고문으로 심한 부상을 당해 국군통합병원에 후송, 70여일간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이후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국군통합병원 병상이 있던 자리 | 폐허가 된 채 사람의 흔적 하나 없는 이 공간에서 처절하게 무너졌던 당시의 자존감을 떠올렸다. 당시 93세였던 할머니는 “저 아그가 차가운 디 있는디 내가 어케 따순 밥을 먹겄냐”고 하셨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들을 수 있었다.

 

■이무현 1957년 5월 생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80년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하여 29일 검거 되었고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고문 수사를 받았다. 1981년 4월 3일 석방되었으나 한달 만에 나주 화약고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었다. 1984년 5월 구 도청 앞 분수대에서 진상규명을 외치며 분신을 시도해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2년여 입원치료를 했으나 아직도 완치되지 않았다.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으로 10여 년간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하고 지난해 10월 퇴원해 현재 건강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아시아문화의 전당 (구 전남도청)/ 5·18자유공원 군사법정 | 진실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곤봉과 군홧발에 짓이겨져도 날아오는 총알에 두려워도 피하지 않고 맞서 버티고 매달렸다. 원하는 것은 진실 하나 뿐이었고 그래서 물러서지 않으려 했다. 끝까지.

 

■이성전 1949년 9월 생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80년 당시 시민들이 공수부대에 의해 구타당하는 것을 보고 울분을 느껴 투쟁에 참여했다. 7월 1일 연행되어 화순경찰서에서 한 달여 동안 하루에 대여섯 차례씩 심한 고문을 받았다. 이후 505보안대,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고문수사를 당하고 구속수감 되었다. 출소 후 거리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을 지속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마비 등 합병증으로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505 보안대 고문실 | 36년 째 멈추지 않는 좌절과 고통의 시간. 가정조차 팽개치고 오로지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민주화 투쟁의 대열에 나서야만 했다. 내게 물을 먹이고 사지를 비틀어대던 그들이 있던 자리에 서서 내 부서진 몸이라도 벌떡 일으켜 보려했다.

 

■이행용 1954년 7월 생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80년 당시 운영 중인 석재공장에 계엄군이 주둔한 것에 분노해 시민군에 참여했다. 27일 이후 일상생활을 하던 중 수배된 사실을 알고 몇 년 동안 도피생활을 하다 체포되었다. 총을 내놓으라며 고문 수사를 받고 60여일 만에 풀려났는데, 물고문과 고춧가루 고문이 가장 힘들었다. 현재 광주 전역에 있는 5·18사적지를 관리하고 있다.

[기타뉴스]아픈 기억, 그래도 회복한다

5·18자유공원 마당 | 그들은 높고 나는 낮았다. 높은 하늘은 한없이 푸르렀고 트럭 바닥은 매섭게 시리고 차가웠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이 바닥이 아니어야 했다. 짓밟히고 무너져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어야만 했다. 어느 누구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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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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