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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juin 2010 1 14 /06 /juin /201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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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15일 한반도엔 희망의 무지개가 솟았다. 남과 북의 두 정상이 55년 적대 종식과 화해·협력의 새 시대 개막을 세계에 선포했다. 평양엔 100만여 시민들의 환영이 물결쳤고, 남쪽 국민의 95%가 제1차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로부터 10년. 남북관계는 역류하고 있고, 6·15 선언은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생일을 맞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6·15 선언이 두드린 희망의 메시지는 각별한 울림을 안긴다. 6·15 공동선언 10돌의 의미와 성과, 현실을 돌아본다.

 

 

DJ·참여정부 ‘담대한 진전’

 

 

6·15남북공동선언은 한반도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냉전과 반목, 불신을 넘어 남과 북이 스스로의 힘으로 교류와 협력, 상호 신뢰와 존중을 통한 통일의 대원칙에 합의했다. 남북 정상은 분단 사상 처음으로 직접 이 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정상 차원의 합의 이행 의지를 안팎에 천명했다. 2박3일의 화기애애하면서도 치열했던 토론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정상 간의 만남과 신뢰쌓기가 어떤 역사적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6·15 선언은 극적으로 보여줬다.

 

6·15 선언은 남북관계 발전의 기폭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이산가족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기회가 열렸다. 이산가족의 뜨거운 상봉은 이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전까지 단 한 해도 끊기지 않았다.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통한 상봉 정례화에도 성큼 다가섰다. 노태우 정부가 방북을 허용한 1989년 이후 11년간 1만1985명에 그쳤던 남북 왕래 인원은 2000년 한 해에만 7280명을 기록했고, 개성공단 가동 등에 힘입어 2008년엔 18만6775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 6.15 남북공동선언 요약
 
 

1998년 11월 시작된 금강산관광도 6·15 선언 이후 우여곡절 속에서도 성장 토대를 쌓았다. 99년 14만8000여명이던 관광객은 2007년 34만5000여명으로 늘어났다. 또 하나의 접경지 경협 사업인 개성공단도 6·15 선언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준비를 거쳐 가동에 들어갔다. 2005년 7600여명으로 출발했던 개성공단 북쪽 노동자는 2010년엔 4만3000여명으로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의 거듭된 악화 가운데서도 마지막 버팀목으로서의 생존력을 과시하고 있다. 남북을 잇는 철도·도로도 새롭게 뚫렸다. 개성공단을 지나 평양으로 통하는 경의선과 금강산으로 가는 동해선이 열렸다. 이를 위해 군사분계선에 각각 너비 100m와 250m씩의 남북이 관리하는 통로를 닦았다.

6·15 선언은 또한 남북 사이 군사적 긴장완화의 출발점이었다. 2000년 9월 1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시작으로 교류·협력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군 당국간 회담이 이어졌다. 2002년 6월 2차 서해교전 직후 북쪽은 ‘핫라인’을 통해 의도적 도발이 아니라는 해명을 보내왔다. 1차 정상회담 때 설치에 합의했던 이 직통선을 통해 남과 북은 정상 차원의 의사 소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04년 6월엔 2차 남북장성급 회담에서 ‘서해 우발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상의 심리전 중지’ 합의가 이뤄졌다. 2009년 11월까지 남과 북 사이 서해상의 무력충돌은 다시 벌어지지 않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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