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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i 2011 7 01 /05 /mai /2011 17:38

130425036447 201105024·27 재보궐 선거 이후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이 크게 출렁였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를 제치고,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 1위로 올라섰다.

 

<한겨레>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4월30일 여론조사 결과, 그동안 5% 안팎에 머물던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지지율이 10.6%로 껑충 뛰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지난달 10.8%에서 6.4%로 뚝 떨어졌다. 두 사람의 순위가 뒤바뀐 것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최근 2년 동안 조사에서 처음이다.

 

손 대표 지지율의 수직상승은 4·27 경기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불가능할 것 같던 승리를 일궈내면서, 야권 지지층에게 ‘대안 가능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손 대표가 분당을 당선과 야권연대 등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확인받으면서, 야권의 전통적 지지층이 ‘대선주자 손학규’에게 품었던 의문이 일정 정도 걷히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출마부터 당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대중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점도 지지율 상승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130425029165_20110502.jpg반면, 유시민 대표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로는 지난해 3월(4.5%)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경남 김해을 단일화 협상 과정의 ‘벼랑끝 전술’과 이봉수 후보의 패배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유 대표가 견고하고도 열성적인 ‘마니아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지지율이 급격히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다만, 지난해 경기도지사 선거에 이어 야권 내부 경선에서 이기고 본선에서 연거푸 패함으로써 ‘확장력의 한계’가 드러난 대목이 유 대표로선 뼈아플 수 있다. 그의 잠재력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면서 지지율 정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야권 1위로 올라서면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가상대결 경쟁력도 크게 높였다. 이번 조사에서 link두 사람의 가상 대결 결과는 박 전 대표 52.7%, 손 대표 32.8%였다. 19.9%포인트 격차다. 1개월 전 조사에선 박 전 대표 59.8%, 손 대표 27.0%로 두 사람의 격차가 32.8%포인트나 됐었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35.2%로 1개월 전(36.1%)와 큰 변화가 없다. 다만, 박 대표의 지지층 구성에선 다소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윤희웅 실장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재보선 패배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현실적 카드’인 박 전 대표 쪽으로 결집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지지층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던 중도파, 무당파, 일부 야당 지지층이 손 대표 쪽으로 옮겨갔는데 그 빈자리를 박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던 한나라당 지지층 일부가 다시 채웠다는 얘기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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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janvier 2011 6 15 /01 /janvier /2011 00:21

수감중인 윤기진씨와 가족들간의 만남에는 문제가 없었는지요? 구속 수감에 대한 조치와 처후가 국제적 협정에 위배되지는 않았는지요?



 (...) 현재 대전교도소에는 난방 시설이 전혀 구비되지 않은 상태이고 수감자들은 영하 10도를 웃도는 날씨에 시멘트 바닥에서 이불 하나에 의존해서 생활을 하는 실정이며, 여름에는 독방의 손바닥만한 창문마져도 자살을 방지한다는 미명하에 쇠로 만든 모기장을 설치하면서 그나마 밖을 없게 되었고, 여름에는 통풍이 되지 않아 수감자들은 찜통 같은 독방에서 고생을 하고 있다. 또한 오랜세월 수많은 양심수들의 투쟁으로 쟁취한 집필권도 지금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여러 양심수들이 이에 항의 하여 변호사와 가족을 통해 항의를 하였지만 정부는 이를 모른채 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감옥이란 교화와 교정에 대한 인식보다는 형벌이 우선시 되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처우는 일제시대 형무소와 다를바가 없는 실정이다. 북유럽에서는 형벌을 기간만큼이나 사후 심리치료가 진행이 되는데 대한민국에서도 같은 제도가 요구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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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janvier 2011 6 15 /01 /janvier /2011 00:19

수감중인 윤기진씨와 가족들간의 만남에는 문제가 없었는지요? 구속 수감에 대한 조치와 처후가 국제적 협정에 위배되지는 않았는지요?



문제가 많이 있다. 우선 그가 수배중일 서로 만나기 위해서는 경찰의 미행을 피해 시간을 버스, 전철, 택시를 갈아타면서 겨우 만날 있었고, 수배생활 올린 결혼식 마져도 경찰이 원천 봉쇄를 하여 탄압을 했다.  다행히 결혼식에 참여한 수많은 하객들의 도움으로 결혼식을 진행하고 윤기진씨는 연행을 피할 있었다. 그가 수감된 대전 교도소에서는 일반 면회 아크릴 판으로 분리된 곳에서 마이크를 통해 대화를 나눌수 있는 정도이고,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주어지는 장소변경 접견시에도 교도관의 입회 하에 철창을 사이에 두고 면회를 있는데 수감 태어난 아이도 안아보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매번 면회를 마다 아이와 아빠는 철장을 통해 겨우 손을 잡아 있고, 영문도 모르는 아이는 철창을 통해 아빠의 손을 끌어 당기면서 집에 가자고 하여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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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janvier 2011 6 15 /01 /janvier /2011 00:18

이남에서 국가 보안법에 의해 구속 수감되어있는 공안 사범을 몇명 정도 입니까?

그리고 윤기진씨의 석방과, 시대착오적인 국가 보안법 폐지를 위해 어떠한 활동들이 전개 되었습니까?



지금 현재 수감되어있는 사상범에 대하 통계를 정확히 없으나 통일 관련 인사중에는 대표적으로 미국국적으로 방북하였는 장민호씨, 방북대표 한상렬 목사님등 여러명이 있고, 남한 사회에서는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을 하였던 수많은 양심수가 존재했었다.



이명박 정권이후 공안탄압을 계속 자행되면서 많은 운동가들에 대한 내사, 압수 수색이 진행되었고, 국가 보안법 이외 집시법 위반 사범들은 수없이 많다. 특히 노조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집회 시위법 이외, 폭력가중 처벌법을 적용 구속, 수감하고 있고, 종교적, 성정체성의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젊은이들도 감옥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또한 남북 분단구조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미디어, 정보 통신법을 들어 인터넷 상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고 억압하고 언론통제를 하고 있는 실정이며, 정보통신법 반테러 법등 여러 법들을 만들어 국가보안법을 더욱 강화하면서 수많은 양심수를 양산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이후 기본적인 민주주의와 민생과 인권이 보장되지 않아 수많은 투쟁사안들이 즐비하고 있으며,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의 수위가 높아지는 등의 낮은 수준의 정치하에 제도적 차원에서의 국가 보안법 철폐는 기대하기 힘든 실정 이다. 감옥에 있는 윤기진씨에게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에 올라온 정부 비판글을 내리라고 명령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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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janvier 2011 6 15 /01 /janvier /2011 00:14

윤기진씨의 형량이 오는 2 만기 예정되어 있는 와중에, 검찰은 그가 옥중편지를 문제시하며 내사중인데, 이러한 검찰의 의도는 무엇이며 혹시 윤기진씨의 사상 전향을 꽤하려는 것은 아닌지?



그렇습니다. 사상범들을 감옥에 가두는 궁극적인 목표가 활동가들의 사상전향과 활동을 위축하게 하는 이고, 수감 글조차 없는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금 그가 옥중에서 편지를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 혐의로 조사를 하고 있고, 검찰들이 교도소로 와서 시간씩 조사를 벌이고 있다. 출소는 예정데로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이후 사건은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을 것이며, 목적은 출소 이후 그의 활동에 부담을 주면서 이를 제약, 위축시키기 위한 협박으로 보고 있다. 현재 그의 편지를 받은 명의 친구들까지도 그의 편지를 타이핑하고 배포한 것을 이적표현물 배포 죄로 조사 이다.



법이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기형적인 형태로 적용이 되는데, 윤기진씨 연행당시 그의 수첩 속에 적혀 있던 이북의 기념일 표기가 이적표현물로 간주되는 개인의 머릿속 생각까지도 검열을 하고자 한다, 예를들어 어떤이가 일기장에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라고 썼을 그에게 그것만으로도 살인죄를 적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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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janvier 2011 5 14 /01 /janvier /2011 23:57

남북 분단이후 60여년 동안 남한에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통일인사와 노조간부들이 정치사범으로 몰려 구속 수감되고 있다. 특히 이북을 이롭게 한다는 이적단체와 관련된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L'Association d'amitié franco-coréenne(AAFC, 프랑스 조선 친선 협회)는 2008년 이후 진보세력과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는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는 이명박 정부에 의해 악용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고발하고자 한다. 우리는 또한 국가보안법의 이름하에 수감되어 있는 모든 정치사범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무고함을 변론하고자한다. L'AAFC는 남북 통일과 사상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바치며 투쟁하며 오늘날까지도 국가보안법에 의해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윤기진 씨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의 아내 황선씨와 인터뷰를 가지게 되었다.

 

황선씨

 

안녕하세요. 한총련 의장으로써 국가보안법에 의해 수감되어 있는 윤기진씨의 활동사항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 주세요.

윤기진씨는 1996 연대 항쟁( 1996 한총련에서 주최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열릴 예정이던 8.15 범민족대회를 정부가 원천 봉쇄하면서 연세대학교에 모였던 대학생들을 폭력적으로 탄압, 연행, 구속했던 사건)에서 연행되어 이미 수감생활을 했었다. 이후 1998 12 명지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당선이 되고, 정부는 학생들의 투표로 합법적으로 당선된 총학생회 조차도 불법, 이적단체로 규정하면서 그의 수배생활이 시작된다. 99 한총련의장으로 당선이 되어 청년, 학생 통일 운동의 대표자로써 활동을 하는데 대표적으로 99 한총련 방북대표를 평양 축전에 보내게 된다.



2000 한총련 의장에서 물러난 그는,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보다 합법적이고 대중적인 통일 운동을 위한 활동을 하는데 대중적인 방북, 방남 추진과 합법적 남북 청년학생 대표의 만남을 추진하는 활동등.



노무현 정부 이후 진보 진영에서는 국가 보안법 무력화와 철폐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면서 국가보안법 철폐가 거의 실현되는 하였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이것이 무산되었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통일 운동진영에 대한 탄압은 극심해 지면서 정부 출범 이틀 뒤인 2007 2 27 윤기진은 친구의 자택에서 국가보안법상 회합 통신법에 의해 연행, 구속 수감이 된다. 이명박 정부는 그를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도와주었던 친구에게 마져도 범인 은닉 편의 제공 등을 핑계로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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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juin 2010 6 26 /06 /juin /2010 23:22

ㆍ충청 릴레이 단식 · 광주 기도회 · 전북 협의회 발족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시민·사회·종교단체의 활동이 다시 불붙고 있다.

4대강 사업과 무관한 전북의 시민·사회·환경·종교단체들도 동참했다. 정부가 6·2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무시하고 4대강 사업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대전·충남·충북지역 환경·시민·사회·종교 관련 60개 단체로 구성된 ‘금강을 지키는 사람들’은 24일 오전 10시 충남 공주시 공산성 내 영은사의 금강선원에서 ‘4대강 사업 중단 촉구 릴레이 단식’에 돌입했다.

금강을지키는사람들은 4대강 사업이 중단될 때까지 매일 1명씩 24시간 동안의 단식을 이어가기로 했다. 첫 단식자로는 대전충남기독교연대 노준례 상임대표가 나섰다. 금강을지키는사람들은 성명을 통해 “우리들의 곡기를 끊는 단식을 통해 강의 생명줄을 살리겠다”고 밝혔다. 금강을지키는사람들은 다음달 5일 종교 및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시민들이 참가하는 공동기도회를 열고 4대강 사업 반대 열기를 모아가기로 했다.

광주교회협의회 소속 목사 50여명도 24일 전남도청 앞에서 ‘이명박 정부 4대강 사업 중단과 박준영 전남도지사 회개 촉구 기도회’를 열고 신성한 자연과 생명 죽이기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기독교 신도와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광주교회협의회 회장인 김병균 목사는 대표기도를 통해 “토목 회사들의 배불림을 위해 인간과 동식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쫓아내는 천박한 행위를 당장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이 정부의 영산강 살리기는 강바닥을 5m 이상 파내고 물의 흐름을 가로막아 인공호수를 만드는 사업”이라면서 “이런 사업을 적극 지지하는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회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도회를 마친 목사들은 지난 14일부터 광주·전남지역 90개 단체 대표들이 시작한 전남도청 앞 농성에 참가, ‘4대강 반대 밤샘 토론회’를 열었다.

4대강 사업과 무관한 전북지역의 환경·시민·사회·종교단체·정당들도 ‘4대강 사업 중단 전북협의회’를 발족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이정현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번 선거 결과는 환경파괴 예산낭비 4대강 사업을 중단하라는 국민적인 요구였다”며 “정치권은 물론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환경시민사회단체·종교계·학계 등이 힘을 하나로 모아 4대강 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4대강 사업 반대활동은 다음달 3일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와 18일 열리는 문수 스님 49재 행사 등을 계기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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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avril 2010 3 21 /04 /avril /2010 11:04
 
(평양 4월 19일발 조선중앙통신)남조선인민들의 4.19인민봉기 50돐기념 평양시보고회가 19일 중앙로동자회관에서 진행되였다.

1960년 리승만매국역적도당의 《3.15부정선거》를 계기로 일어난 남조선인민들의 4월인민봉기는 삽시에 남녘땅 전역으로 급속히 확대되여 미제와 매국역적도당을 공포에 떨게 하였으며 파쑈독재《정권》을 붕괴시켰다.


보고회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양형섭과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영대,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류미영,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조충한, 사회단체 책임일군들, 대학 총장, 학장들, 평양시내 정권기관 일군들, 근로자들, 청년학생들이 참가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 안경호는 보고에서 남조선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봉기를 통하여 자주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새 세상을 안아오기 위해 일떠선 인민들의 영웅적기개와 불굴의 의지는 그 무엇으로도 꺾을수 없고 인민대중이 단결하여 투쟁에 나선다면 침략자, 압제자들을 짓부셔버릴수 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적지배와 예속을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선 여러 나라 인민들의 투쟁을 크게 고무하였다고 그는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민족자주, 통일로선의 기치따라 남조선인민들은 그후에도 1980년 광주인민봉기를 비롯한 대중적인 항쟁과 봉기를 통하여 미제와 괴뢰도당의 식민지파쑈통치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반미자주화와 반파쑈민주화,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커다란 전진을 이룩하였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강점과 지배를 끝장내고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수호하며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려나갈데 대하여 말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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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조선 친선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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